장모님 49재를 마치고

오풍연 | 기사입력 2019/10/09 [15:31]

장모님 49재를 마치고

오풍연 | 입력 : 2019/10/09 [15:31]

장모님 49재를 모두 마쳤다. 오늘 탈상을 했다. 지난 8월 22일 돌아가셨다. 하늘나라로 영원히 보내드린 것 같다. 장모님이 웃는 얼굴이다. 대전에서 형님과 형수님도 오셨다. 사돈 어른 막재에 참석한 것.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아들 녀석도 휴가를 내고 함께 제사를 지냈다. 처 작은아버지 부부, 사촌 처남도 와서 장모님의 안식을 빌었다.

장모님을 보내드리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장모님은 살아계실 때 많은 것을 베푸셨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있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쥐어주려고 하셨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관리 사무소 직원들도 장모님의 죽음을 슬퍼했다. “우리들한테 정말 잘 해주셨는데”. 특히 이웃에게 친절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모님을 좋아했던 이유다.

장모님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다리, 허리도 안 좋았지만 당뇨로 고생하셨다. 결국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에는 발가락이 썩어갔다. 그러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작년 11월 20일 병원에 입원하셨으니까 9개월 2일 동안 병원에 계셨다. 정신은 멀쩡했다. 그러니 더더욱 병원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병원비 걱정을 하셨다. 내 벌이를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다지 여유가 없었기에 아범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한테는 병원비는 내색도 하지 말라고 했다. 어떻게든 내가 마련할테니까. 다행이 빚을 지지 않고 병원비를 댈 수 있었다. 적지 않게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병원에 더 오래 계셨으면 힘들 뻔 했다. 그런 것을 알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장모님마저 세상을 떠나셔서 어른들이 한 분도 안 계시다. 아버지는 1975년, 어머니는 2008년, 장인은 1993년, 장모님은 올해 돌아가셨다. 우리 부부도 고아가 됐다고 할까. 남은 우리들이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와 아내, 아들 등 셋만 남았다. 아들도 언젠가는 분가할 터. 그럼 우리 부부 둘만 남게 된다. 아내한테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죽을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가족이다. 장모님도 그랬다. 직계 가족만 곁을 지켰다. 우리 부부와 아들, 처제 부부 등 다섯 명이 임종을 봤다. 가족에게 특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남과 다른 까닭이다. 정말 가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남에게는 잘 하는데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49재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아내한테 얘기했다. “신 여사(아내 호칭) 수고했어. 장모님은 편한 데로 가셨을 거야. 우리 건강하자.” 그렇다. 건강이 최고다. 부부 중 한 사람만 아파도 행복지수가 뚝 떨어진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아내의, 남편의 건강을 챙겨주어야 한다. 부부가 건강검진을 꼭 받도록 하라.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회사 측의 배려도 있었다. 매주 제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근무 날짜도 바꿔주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사위 노릇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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