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죽음 대신 의롭게 죽자

오풍연 | 입력 : 2020/07/10 [15:53]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두 없다고 하면 거짓말 일 것이다. 인간은 항상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낱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또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죽음을 맞이한다. 어떻게 죽느냐도 인간의 관심사다. 어제 저녁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게다. 나도 그를 잘 알기에 만감이 교차한다.

박 시장의 죽음을 보면서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고 조영래 변호사다. 박 시장과 조 변호사는 80년대부터 인권 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나는 1986년 12월부터 기자생활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 언론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고 박종철군 사건이 터진 이후 여기 저기서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1987년에는 6·10 항쟁에 이어 6·29 선언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결정적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사회 주요 인사의 코멘트를 따곤 했다. 박 시장과 조 변호사는 단골손님이다시피 했다. 많은 변호사들이 침묵할 때도 둘은 언론과 접촉을 했다. 나도 두 사람과 여러 차례 통화도 하고, 코멘트를 딴 적이 있다. 박 변호사(당시)의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 있었다. 그에게서 많은 얘기를 들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육성이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원순은 훗날 평가를 받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가 일생동안 한 일은 많다. 누구보다도 남을 위해 일을 많이 했다. 큰 발자취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 미투는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의로운 죽음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지만 피해자 편에서 박 시장의 위선을 지적하는 글도 적지 않다.

반면 조영래는 끝까지 약자 편에 서 있다가 갔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쓴 ‘조영래 평전’도 있다. 떠난지 오래 됐지만, 조영래는 인권 변호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박원순도 충분히 그만큼 역할과 일을 했지만 미투 사건으로 빛이 바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서울시장(葬)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그것 또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서울시장에는 반대한다.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게다. 의(義)롭게 죽고 싶다. 내가 정직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기는 쉽다.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서러워 할 이유가 없다. 값진 죽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쁜 변호사로부터 두 차례나 고소를 당했다. 이 변호사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두 차례나 고소를 당했지만 떳떳하다. 나쁜 사람을 혼내주기 위해 앞장 섰다. 내 행위가 법에 어긋난다면 처벌을 감수할 용의도 있다.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비겁하다. 처벌이 두려워 행동하지 않는다면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말 보다는 실천이다. 내가 사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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