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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칼럼: 친구, 그 아름다움이여

오풍연 승인 2021.04.06 06:57 의견 0

내가 늘 말하는 것이 있다. 행복하려면 일이 있어야 하고 소통, 즉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물론 가족과 건강은 기본이다. 오늘은 친구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 벗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진정한 벗은 아예 없든지, 손꼽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를 사귀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다. 친구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부자들에게 친구가 많을텐데 그들이 더 외롭다. 친구가 없는 까닭이다.

먼저 친구의 개념부터 살펴본다. 나랑 친한 사람이 바로 친구다.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대를 초월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친구는 대부분 또래가 많다. 동갑이 가장 많고, 한 두 살 차이도 그냥 친구처럼 지낸다. 나는 60년생 쥐띠이지만 58년생 개띠 친구들도 많다. 이런 경우 형 동생 하는 것보다 말을 트고 지내면 훨씬 가까워 진다. 말을 틀 때는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자고 해야 한다.

나는 요즘 또 다른 기쁨을 맛 보고 있다. 80년대 초 미군 부대서 함께 군대생활을 했던 카투사 동료를 만났기 때문이다. 만 36년만에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가 나보다 군대는 선임이다. 군에 있을 때도 유독 가깝게 지냈다. 각자 제대를 하고 난 뒤 서로 연락이 끊겼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늘 보고는 싶었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연락을 받은 첫 날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느낌이다.

우린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바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서로 목소리를 듣고 이튿날 만났다. 20대 풋풋했던 우리가 환갑도, 진갑도 지나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다. 40년이면 강산도 네 번 변한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부끄럼 없이 지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친구에게서도 당당함이 읽혀졌다.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 친구가 서울 성수동 우리 회사로 먼저 찾아왔다. 나는 작은 회사 고문으로 월, 수 이틀만 출근하는데 골방이 하나 있다. 그래서 누가 찾아와도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말도 없이. 그 순간 내가 생전 경험해 보지 못 했던 일이 일어났다. 나도 울컥했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말하자면 남자의 눈물이었다.

내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뒤 회사 근처 고깃집으로 갔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나도,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쭉 했다. 친구는 소폭으로, 나는 콜라로 대작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를 보니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런 게 우정 아닐까. 그래서 둘이 다짐을 했다. “우리 앞으론 헤어지지 말자” 그 첫 번째로 같이 있을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친구가 지난 주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나도 종종 가 있을 곳이다. 둘의 사랑방이 될 듯 하다. 우정보다 진한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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