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 죽음,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한다지만

오풍연 승인 2021.07.21 08:11 | 최종 수정 2021.07.21 10:49 의견 0


죽음을 뛰어넘기는 어렵다.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마주친다.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세계 인류의 꿈은 오래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100살 넘은 노인들도 드물지 않게 본다. 인류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사망 평균 나이가 85세쯤 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슬픈 죽음을 본다. 나도 올들어 두 번이나 경험했다. 솔직히 보고 싶지 않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운명이었다. 올 초 지인의 아내가 떠났다. 3년 가량 유방암 투병을 하다가 끝내 일어서지 못 했다. 경기도 가평에 단독 주택을 마련해 이사까지 하면서 공을 쏟았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그 집에 3~4차례 갔었다. 그래서 더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도 똑같았다. 지인이 페이스북에 별세 소식을 올렸다. 잘 아는 사이인데도 따로 연락하지 않고 페북에만 부음 사실을 공유했다. 바로 장례식장에 달려갔다. 고인의 영정을 보니 말이 안 나왔다. 생전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남편은, 아들 딸며느리 사위는 오죽하겠는가. 그 아내에게도 약속을 했다. “남편과 평생 친구로 잘 지내겠다. 그러니 편히 가시라”고. 내가 지상에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약속이었다. 지인과는 요즘도 자주 통화하면서 지낸다.

최근에는 더 슬픈 소식을 접했다. 나도 아직껏 가슴이 먹먹하다. 친동생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또 다른 지인이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생이별 했다. 엄마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딸은 둘의 모두였다. 나는 그동안 딸 얘기를 종종 들어서 그들이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안다. 그 같은 사랑에는 사연도 없지 않았다. 아빠인 지인이 그 사연을 눈물로 소개하고 있다. 읽는 사람도 눈물이 나서 다 못 읽을 정도이다.

지인은 딸을 묻으면서 울고, 평소 사진을 보면서 울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울었다. 지금은 그에게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따로 조문도 받지 않아 장례식장을 찾지 못 했다. “마음이 정리되면 연락드리겠다”는 짧은 메시지만 받았다. 그래서 더 전화도 못 하겠다. 이번에도 같은 약속을 했다. “아저씨가 아빠의 친구가 돼 평생 보살펴 드리겠다”고. 내가 고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실천가능한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인의 아내도, 지인의 딸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렇게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가족과의 이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건강이 최고다. 가족은 함께 사는 것이 좋다. 오늘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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