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 전두환 사망, 광주시민들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풍연 승인 2021.11.23 12:02 의견 0


전두환이 23일 오전 사망했다. 별세라고 보도하는 언론도 거의 없을 듯 하다. 그의 업보다. 그는 광주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래도 노태우는 아들을 통해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전두환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군부 세력만 아쉬움을 함께 할 것 같다. 전두환 역시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지 못 했을 게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 11기다. 노태우 정호용 등과 동기다. 얼마 전 별세한 친구 노태우를 따라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육사 동기들을 중심으로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고, 군 내에서 세력을 키웠다.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그는 하나회를 주축으로 12ㆍ12 군사반란을 통해 군을 장악했다. 이듬해인 1980년 5월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했고, 그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국정 실권을 쥐었다.

그해 8월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11대 대통령이 됐다. 1981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을 통과시킨 뒤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제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7년 임기 동안 3저(저달러ㆍ저유가ㆍ저금리) 호황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임기 말, 1987년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이후 직선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6월항쟁이 시작됐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6ㆍ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1988년 임기를 마친 전두환은 1995년 김영삼(YS) 정부에 의해 구속기소됐고, 반란수괴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97년 YS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고령임에도 건강을 유지하던 전 전 대통령은 2021년 다발성 골수종을 앓은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날 사망했다.

전두환은 흑역사를 만들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나는 그 현장을 생생이 목격했다. 학생들은 군부독재에 항의해 연일 데모를 했다. 공권력은 무자비하게 이를 진압했다. 그 사이 군 복무를 했다. 군에 있을 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몰랐다. 독재정권이 오래 갈 리는 없다. 87년에는 시민들도 가세해 타도 군부독재를 외쳤다. 가히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은 용서받을 수 없다. 40년이 지났지만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가족들이 적지 않다. 전두환이 사과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태우처럼 가족을 통해 사과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그것마저 외면했다. 전두환은 사람을 죽인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죽기 전에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이제 전두환도, 노태우도 갔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전두환에게는 노태우 만큼의 예우를 해주지 못할 것 같다. 전두환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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