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 롯데 순혈주의 버렸다

오풍연 승인 2021.11.26 08:50 의견 0


30여년 전 우리가 입사할 때만 해도 롯데는 매우 안정적인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비록 다른 기업에 비해 보수는 낮아도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로 통했다. 따라서 승진도 늦었고, 나이 많은 임원도 적지 않았다. 가장 보수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고 신격호 회장 때는 그런 것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기업들은 날아갈 때 롯데는 뛰어갔다고 할 수 있다.

롯데는 백화점, 호텔 등 유통 서비스 기업으로 불린다. 그런데 시대 흐름을 놓친 우를 범했다. 국내 5대 기업이라고 하지만 삼성 현대 SK LG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올들어서는 구조조정도 했다. 화학분야를 빼놓곤 모두 고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신동빈 회장이 칼을 빼들었다. 25일 발표된 인사가 그랬다.

롯데는 상대적으로 외부인사가 적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혈주의를 버린 느낌이 든다. 롯데는 내부 인사로 경영을 해온 대표적 기업이다. 그 한계에 부딪혔다고 할까. 신 회장이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 하다. 롯데는 전체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너무 침체돼 있는 것 같다.

새로 발탁한 인사들을 보자. 신임 유통군 총괄대표로 선임된 김상현 부회장(58)은 한국P&G 대표, 미국P&G 신규사업 부사장, 홈플러스 부회장 등을 거친 외부영입 인사다. 롯데가 핵심 부문인 유통의 총괄대표 자리를 외부에서 수혈하기는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문성과 이커머스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사업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호텔군 총괄대표로는 안세진(57) 전 놀부 대표이사가 영입됐다. 안 신임 총괄대표는 신사업 전문가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커니 출신으로 LG그룹과 LS그룹에서 신사업·사업전략을 담당했다. 모건스탠리PE에서 놀부 대표이사도 역임했다. 신사업과 경영전략, 마케팅 등에 대한 전문성으로 호텔사업군 브랜드 강화, 기업가치 개선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의 신임 백화점사업부 대표도 공채 출신이 아니다. 경쟁사인 신세계에서 경력을 쌓은 정준호(56) 롯데GFR 대표가 내정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본부 본부장, 조선호텔 면세사업부 사업담당, 신세계 이마트 부츠 사업담당 등을 거쳤고 2019년부터 롯데GFR 대표를 맡았다.

롯데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순혈주의가 강한 조직이었다. 그만큼 이번 인사에 따른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조직원들의 승진에 대한 염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연차순으로 승진을 시키는 일종의 순번제가 암묵적으로 지켜져 왔지만 외부인사 영입으로 인해 이같은 관례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본인 혹은 다음 차례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이같은 걱정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인사는 신동빈의 승부수로 읽힌다. 롯데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재계도 롯데의 변화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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